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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itting

Kick-off

외할머니께 뜨개질을 배운 엄마는 9살의 나에게 뜨개질을 가르쳐주셨고,

나의 첫 작품은 샛노란색 가터뜨기 목도리였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것이, 9살짜리가 뜬 목도리는 폭이 들쭉날쭉 아주 볼품 없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잡고 앉아서 목에 두를만한 길이의 목도리를 만들어 낸 어린시절의 나는 손뜨개에 적성이 있음을 주장했던 것 같다.

 

학창시절을 거치며 드문드문 코를 잡고 완성하지 못한 무언가를 계속 시도하고 결국 몇개의 목도리와 케이프 모자 등등 소품 위주로 뭔가를 만들어냈다. 

대바늘뜨기는 상대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리니 어린시절에는 여름마다 코바늘로 도일리를 뜨는게 재미있었다.

물론 제대로 블로킹까지 끝냈던 도일리는 없지.

 

첫직장에 들어가서 8년을 눈코뜰새 없이 일하다 무작정 퇴사를 하고 6개월 쉬는 동안, 엄마 따라서 종종 가던 동대문의 실가게에 출석 우등생이 되어서 엄마에게 처음으로 가디건도 떠드리고 배색풀오버도 떠입고 이것저것 뜨개 완성품을 만들다가, Ravelry.com이라는 천국의 문을 열게 된다. 

이게 7년 전 이야기... 

아 세월아....

 

당시에 내 눈앞에 열린 Ravelry의 영문도안과 대바늘로 뜨는 원형의 숄들은 정말 신세계였고, 그렇게도 숄을 떴더랬다. 

나의 대바늘뜨기 숄들 다 어디에 갔을까... 

 

그러던 어느날, 퇴직금이 반토막 나는 순간이 왔고 나는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이 직장생활 역시 눈코뜰새 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7년을 모니터만 바라보다가 문득 이젠 내가 하고싶은 일도 하면서 살고 싶어졌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손으로 뭔가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대바늘뜨기를 다시 조금 더 진지하게 시작해볼 마음이 생겼고, 7년만에 Ravelry.com에 들어갔더니 트랜드는 싹 바뀌었지만 여전히 그곳에는 수많은 뜨개질덕후들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만세!

 

일단 칼을 뽑았으니 결제를 해야지. 

지금 내 회사 책상 아래엔 엄마에게 등짝 맞을까봐 집에 가지고 오지 못한 콘사가 6개쯤 있다. 

내 침대밑엔 엄마몰라 감추어 놓은 타래실도 몇개나 있고.. 

회원가입 극혐이라 신용카드도 한장만 쓰는 내가 Ravelry에서 도안 결제하려고 페이팔도 가입했다. 

그리고 신나게 도안쇼핑을 다니는 중이다. 

 

집에 있는 짜투리실로 소품 만들어서 주변에 선물도 좀 해야겠다. 

 

이제 조금 더 진지하게 새로 시작합니다.